주변 여행지

주변 여행지

주변 여행지

뒷미지 수변공원

성주 초전면 뒷미는 조선 정조 원년 때 (1777) 朴在春이란 선비가 마을에 入鄕하고 마을 뒤에 형세가 좋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그 산세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형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後山(뒷미 - 경상도 지방사람들은 뫼를 미로 발음하기도 함 으로 ) 부르게 되었다 그 마을 이름을 따서 뒷미지 수변공원으로 지었고 뒷미지(후산지) 수변공원은 1970년대 부터 연이 재배되고 있었던 연꽃자생지였으며 습지가 , 많이 분포되어 있어 연꽃 재배의 최적지였다고 한다. 2만5천932㎡(7천844평)의 넓은 연지에 백련, 홍련, 수련 등이 만발하여 정자와 구름다리, 분수, 미루나무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같은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문화휴식공간이다.
[ 출처 : 성주 문화관광 ]

아라월드

성주군을 찾으면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곳이 성주호로 특히 7㎞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규모 수상 물놀이시설이 조성된 아라월드와 독용산성 자연휴양림을 함께 즐기면서 하루 이틀 머물다 가고픈 휴식과 레저가 함께하는 명소로 발전하였습니다.
[ 출처 : 성주군청 ]

성주 만귀정

성주 만귀정은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를 역임한 응와(凝窩) 이원조(1792~1871)가 1851년에 귀향하여 독서와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원조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제자로 1809년(순조 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 판의금에 이르렀다. 당시에 유학과 문장에 있어 유림의 으뜸으로 추앙받았으며, 지방관으로서도 많은 치적을 올렸다. 그는 과거급제 후 근 40년간 관직생활에 몸담고 있어 학문과 후학양성에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양과 강학에 전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건물의 이름을 만귀정이라 한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

가야산, 해인사

가야산은 예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했으며, 신라 말 난세를 비관하여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산문에 들어가 선화[仙化]한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농산정, 학사대 등의 유적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 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하고 있다.

야생화 식물원

가야산 야생화식물원은 성주군에서 조성한 군립식물원으로 야생화를 주제로 하는 전문식물원이다. 2006년 6월 16일에 개원했다. 총 660여 종의 나무와 야생화를 식재하여 야생화 자원보전과 자연학습, 학술연구발전 및 가야산 자생식물의 보호에 기여하기 위한 야생화 문화공간이다. 가야산식생도, 트라이비젼, 곤충전시관, 드라이플라워 등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외전시원과 온실도 있다.
[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

한개마을

성주 한개마을은 성산이씨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촌락이다. 조선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이곳에 이주하여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는 월봉 이정현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한옥 보존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는 영취산(331.7m)이 좌청룡 우백호로 뻗어 있고, 서남쪽으로 백천이 흐르고 있어 영남 제일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구한말 성리학자 이진상을 비롯, 응와 이원조 등 예로부터 이름난 선비를 많이 배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